전력 공급 능력이 AI 혁신의 속도와 성패를 가늠하는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이론적 한계에 부딪힌 실리콘을 대신해 새로운 전력 반도체 소재로 급부상하고 있는 SiC, GaN이 주도하는 반도체 시장에 대해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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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 WBG 57억불 시장, 두 자릿수 이상의 고성장 집중
소재-소자-모듈 수직통합 역량 갖춰야 새로운 에너지 패권
[편집자주]전력 공급 능력이 AI 혁신의 속도와 성패를 가늠하는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이론적 한계에 부딪힌 실리콘을 대신해 새로운 전력 반도체 소재로 급부상하고 있는 SiC, GaN이 주도하는 반도체 시장에 대해 살펴봤다.
■ 전력 수요의 비선형 폭증
AI 대전환이 촉발한 전력 소비의 급팽창이 세계 에너지 시스템의 새로운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은 약 415TWh로, 전 세계 총 전력 소비량의 1.5%를 차지한다.
반면에 이 수치가 2030년에는 약 945TWh로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단순한 총량 증가가 아니다.
AI 데이터센터는 기존 일반 데이터센터(10∼25MW)와는 차원이 다른 하이퍼스케일 전력을 요구한다.
단일 하이퍼스케일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는 100MW를 상회하며, 하나의 AI 서버랙은 최대 100kW까지 전력을 요구해 기존 대비 수십 배에 달한다.
가트너는 이러한 수요 증가로 인해 2027년까지 AI 데이터센터의 약 40%가 전력 공급의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전기차(EV), 산업 자동화, 재생에너지 확대까지 더해지면 전력 수요의 압력은 중첩된다.
전력 인프라의 물리적 제약이 AI 혁신의 속도를 가르는 핵심 변수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 그리드 불안정성의 역설
재생에너지 확대가 역설적으로 그리드 불안정성을 심화시키는 구조적 문제도 부각되고 있다.
태양광·풍력의 간헐적 발전 특성은 전력 변환·저장 과정에서 정밀한 제어를 요구한다.
에너지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변환 효율'의 손실이 문제의 본질이라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전력 시스템에서 변환 손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지적한다.
이 손실의 상당 부분이 전력변환 소자, 즉 전력반도체의 효율에 의해 결정된다.
결국 에너지 불안의 해법은 발전소를 더 짓는 것만이 아니라 전력변환 인프라의 근본적 효율화에 있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EU의 Ecodesign 규정 강화, 미국 DOE의 에너지 효율 기준 상향, 탄소국경세(CBAM) 도입 등 글로벌 규제 환경도 고효율 전력변환 기술의 채택을 시장 논리가 아닌 생존 요건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 Si 전력반도체의 이론적 한계
현재 전력 시스템의 주축인 실리콘(Si) 기반 전력반도체-IGBT, MOSFET-는 이미 이론적 성능 한계에 근접하고 있다. 핵심 문제는 세 가지다.
우선 스위칭 손실로 고주파 스위칭 시 Si의 밴드갭(1.1eV) 한계로 인한 손실이 증가한다.
다음으로 항복전압-온저항 트레이드오프(‘실리콘 리밋’)로 내압을 높이면 온저항이 증가해 전도 손실이 커지는 물리적 제약이 있다.
마지막으로 열 관리 한계로 접합 온도 150°C 제약으로 고온 환경 응용에 근본적으로 제한된다.
이러한 Si의 물리적 천장은 시스템 전체 효율의 병목이 된다.
인버터, PCS(전력변환장치), 데이터센터 PSU(전원공급장치) 등 전력변환이 이루어지는 모든 지점에서 Si 소자의 한계가 시스템 효율의 상한을 결정하는 구조다.
■ 와이드밴드갭(WBG) 소재, 물리의 장벽을 허물다
SiC(탄화규소)와 GaN(질화갈륨)으로 대표되는 와이드밴드갭 반도체는 이 물리적 한계를 소재 차원에서 돌파하는 해법으로 부상했다.
두 소재 모두 밴드갭이 Si의 3배 이상이며, 이는 항복 전장과 열 안정성의 극적 향상을 의미한다.

▲주요 전력반도체 소재의 핵심 물성 비교
특히 SiC는 Si 대비 온저항이 100분의 1 수준으로 낮출 수 있고, 동등한 전압에서 훨씬 작은 면적의 소자를 구현할 수 있다.
GaN은 전자 이동도와 고주파 스위칭 특성에서 SiC를 능가해 MHz 이상의 스위칭 주파수가 필요한 응용에 최적화된다.
이 두 소재의 상보적 특성이 Si 전력반도체의 시장을 구조적으로 재편하는 원동력이다.
■ SiC MOSFET, 상용화 성장기의 주류
SiC 전력소자 시장은 전기차(EV) 인버터 탑재를 기폭제로 상용화의 변곡점을 넘어섰다.
테슬라는 자사 EV의 SiC 반도체 탑재 비중을 2018년 64%에서 2022년 99%까지 끌어올렸다.
현대·기아차도 아이오닉5, EV6, 제네시스 EV 라인에 SiC를 채택하며 국내 수요도 급성장 중이다.
현대자동차는 SiC를 인버터에 적용해 최소 5%에서 최대 50%까지 효율을 끌어올린 사례를 공개한 바 있다.
SiC 적용이 단순한 부품 교체가 아니라 시스템 효율의 도약임을 실증한 사례다.
로옴 세미컨덕터에 따르면 글로벌 SiC 전력반도체 시장은 2029년 약 100억 달러에 이르고 연평균 24%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Fortune Business Insights는 2026년 3월 SiC 전력반도체 시장을 2025년 40억2,000만달러에서 2034년 186억1,000만달러로 연평균 17.7% 성장을 전망했한다.
핵심 기술 과제는 8인치(200mm) 웨이퍼 수율 안정화와 원가 하락이다.
현재 주류인 6인치 웨이퍼에서 8인치로의 전환은 생산량을 2배로 늘려 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출 것으로 기대된다.
로옴은 2025년부터 8인치 SiC 웨이퍼 양산을 본격화했으며, 업계는 2027년을 8인치 전환의 실질적 분기점으로 전망한다.
■ GaN HEMT, 데이터센터·급속충전의 새 표준
GaN 전력소자는 데이터센터 전원공급장치(PSU)와 소비자용 급속충전기 시장을 중심으로 채택이 가속화되고 있다.
핵심 경쟁력은 고주파 스위칭이다.
GaN은 스위칭 손실이 적고 MHz급 동작이 가능해 트랜스포머와 인덕터 사이즈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이 덕분에 어댑터 시장에서 같은 크기의 제품이 25W에서 65W까지 지원 가능해졌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글로벌 GaN 전력반도체 시장은 2023년 2억7,000만달러에서 2030년 43억8,000만달러로 연평균 49% 성장이 전망된다.
Yole Developpement는 GaN 시장이 2025년 5억3,000만달러에서 2029년 20억1,000만달러로 연평균 40% 급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GaN은 TSMC가 GaN 사업 철수를 선언한 이후 공급처 다변화 수요가 증가하면서 한국을 포함한 다양한 파운드리들의 적극적인 시장 진입이 이어지고 있다.
■ 차세대 초광밴드갭, 산화갈륨(Ga₂O₃)의 가능성
밴드갭 4.9eV에 달하는 Ga₂O₃(산화갈륨)는 항복 전장이 SiC·GaN을 상회해 초고압 응용(HVDC, 전력망 인프라)에서 잠재력이 주목된다.
현재는 연구·파일럿 단계이며 열전도율이 낮다는 근본적 제약이 해결 과제다.
다이아몬드 반도체도 이론적 성능은 최고 수준이지만 기판 대면적화와 양산 기술이 상용화와 큰 간극을 보이고 있다.
이 세그먼트는 2030년대 이후를 내다보는 전략적 포지셔닝의 영역이다.
현재로서는 기초연구 투자와 원천기술 확보가 핵심이며, 국가 R&D 역량이 미래 시장 위치를 결정할 것이다.
■ 전력반도체 시장 규모 전망

▲글로벌 전력반도체 시장 규모 전망.(출처: CBI(2026.2), 트렌드포스(2024), Yole Developpement(2025), Fortune Business Insights(2026.3))
전력반도체 전체 시장은 안정적 성장세를 보이는 반면, SiC·GaN WBG 세그먼트는 두 자릿수 이상의 고성장이 집중되는 양극화 구조가 뚜렷하다.
이는 Si 전력반도체 시장의 상당 부분이 WBG로 대체되는 구조적 전환을 반영한다.
■ 응용처별 채택 로드맵
○ 전기차 인버터·OBC
EV 인버터는 SiC의 최대 수요처다. 차량 한 대당 SiC 탑재량이 증가하고 있으며, 전기차 보급 확산과 맞물려 시장은 확실한 성장 경로 위에 있다. OBC(탑재형 충전기)는 GaN과 SiC가 경쟁하는 복합 영역이다.
○ 데이터센터 PSU·전력관리
데이터센터는 GaN의 가장 빠른 성장 수요처로 부상하고 있다. 전력밀도 향상과 PUE(전력사용효율) 개선 요구가 Si에서 GaN으로의 전환을 압박한다. AI 서버의 급속 확산은 이 수요를 구조적으로 지속시킬 것이다.
○ 태양광·ESS·HVDC
신재생에너지 인프라 확충은 SiC 기반 인버터·PCS 수요의 직접적 동인이다. 특히 HVDC(고압직류송전) 시스템은 SiC의 고내압 특성이 빛을 발하는 분야로, 글로벌 그리드 현대화 투자와 함께 중장기 성장 동력이 될 것이다.
○ 급속충전·5G·산업 자동화
GaN의 고주파·소형화 특성은 급속충전기 시장을 완전히 재편했다. 5G 기지국 전력증폭기와 산업용 모터 드라이브도 GaN 채택이 확대되는 영역이다.
■ 글로벌 플레이어 포지셔닝

▲주요 전력반도체 기업 포지셔닝 현황. 출처: 업계 자료 종합(2025~2026)
글로벌 SiC 시장은 Infineon, onsemi, STMicroelectronics의 3강 체제가 공고하다.
이들은 소재-소자-모듈에 이르는 수직통합 역량을 기반으로 EV·산업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GaN은 EPC, TI, Navitas 등 전문 기업들이 고주파·고밀도 응용에서 차별화된 포지션을 구축하고 있다.
주목할 변수는 중국이다.
티엔유 일렉트로닉스, BYD 반도체, 산안광전 등 중국 기업들은 SiC 내재화를 국가 전략으로 추진 중이다.
아직 글로벌 선도 기업과 기술 격차가 존재하지만, 막대한 정부 지원과 자국 EV 시장을 내수 기반으로 빠른 추격이 예상된다.
■ 한국의 현재 위치와 전략적 기회
한국의 화합물 전력반도체 글로벌 점유율은 현재 약 2% 수준으로 추정된다.
소재·소자·모듈의 수직통합 역량에서 Infineon, onsemi 대비 현저한 격차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기회의 창도 분명히 열려 있다. 무엇보다 TSMC의 GaN 사업 철수는 한국 파운드리들에게 직접적인 시장 공백을 제공했다.
SK실트론CSS는 SiC 웨이퍼에서 글로벌 공급 기반을 이미 확보했으며, Infineon, 코보와 장기 공급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DB하이텍은 650V E-Mode GaN HEMT 공정 개발을 2024년 완료하고 2026년 하반기 본격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SK키파운드리도 650V GaN HEMT 소자 특성을 확보하고 WBG 전담 R&D 조직을 신설했다.
삼성전자는 2025년 8인치 GaN 파운드리 서비스를 개시하며 후발주자로 합류했다.
한국이 보유한 구조적 강점도 있다.
현대·기아차, 삼성전자, LG전자 등 글로벌 최상위 수요 기업을 내부에 보유하고 있어 수요-공급 연계의 생태계 구축이 타국 대비 유리하다.
파운드리 역량과 수요처 규모를 연계한 ‘수직통합적 생태계’ 전략이 후발주자로서의 한국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경쟁 경로다.
정부도 움직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부산 전력반도체 소부장 특화단지를 지정하고, 2028년까지 국비·민간 합계 1,385억원을 투입하는 화합물 전력반도체 기술 고도화 계획을 발표했다.
2026년 1분기에는 차세대 전력(에너지)반도체 기술로드맵 수립이 정부 핵심 과제로 명시되어 있다.
■ 소재·소자 기업을 위한 시사점
SiC는 8인치 웨이퍼 전환이 원가 경쟁력의 분기점이다. 2027년 이전 8인치 양산 체계 구축이 생사를 가름할 수 있다.
GaN은 고주파 특성 차별화와 파운드리 플랫폼 경쟁력이 핵심이다. 응용별 최적화 공정 확보가 선결 과제다.
SiC와 GaN의 상보적 특성을 아우르는 통합 포트폴리오 전략이 단일 소재 집중 전략을 압도할 것이다.
중국의 추격을 고려할 때 소재-소자-모듈 수직통합 역량 없이는 중장기 마진 방어가 어렵다.
■ 시스템 기업을 위한 시사점
Si에서 WBG로의 소자 전환은 단순 부품 교체가 아닌 전력 아키텍처 재설계를 의미한다. 설계 역량 내재화가 선제 조건이다.
데이터센터는 GaN 기반 PSU와 디지털 전력 제어의 융합으로 PUE 개선의 추가 여지가 있다.
EV 파워트레인에서 SiC 채택률 제고는 주행거리와 충전 효율의 동시 개선으로 직결되는 경쟁 변수다.
공급망 다변화. SiC는 일부 소재·소자 공급이 특정 기업에 집중되어 있어 공급망 리스크 관리가 시급하다.
■ 정책·투자 관점에서의 시사점
소재(웨이퍼)-소자(팹)-모듈(패키징)-시스템(응용)의 수직통합 생태계 구축을 정책 목표로 명확화해야 한다.
한국의 구조적 강점인 수요 기업(현대차, 삼성, LG)과 공급 기업(SK, DB하이텍)의 생태계 연계 메커니즘을 강화해야 한다.
글로벌 SiC 웨이퍼 공급이 특정 기업에 집중된 구조를 고려한 웨이퍼 공급망 확보 전략이 필요하다.
차세대 초광밴드갭(Ga₂O₃, 다이아몬드) 원천기술 투자는 2030년대 이후를 위한 장기 포석이며, 지금이 진입의 시점이다.
■ WBG 전력반도체, 소재-소자-모듈-시스템의 수직통합 역량 갖춘 기업·국가가 패권
에너지 불안의 시대, 전력반도체의 역할은 단순한 부품 교체를 넘어 에너지 문명의 효율을 재정의하는 수준으로 격상됐다.
SiC와 GaN은 Si의 물리적 한계를 돌파해 전력 변환의 손실을 줄이고, 더 적은 에너지로 더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열쇠다.
시장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2030년을 향해 연평균 27% 이상의 속도로 팽창하는 WBG 전력반도체 시장에서 소재-소자-모듈-시스템의 수직통합 역량을 갖춘 기업과 국가가 새로운 에너지 패권을 쥐게 될 것이다.
한국에게 지금은 2%의 점유율을 어떻게 10년 내 두 자릿수로 끌어올릴 것인가를 설계해야 하는 결정적 시점이다.